박창래의 여수수산학교 학생독립운동 사건

 

사건 개요

박창래(1914년생)는 여수공립 수산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학생독립운동 비밀결사 조직인 ‘독서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박창래는 다른 독서회 관련자 21명과 함께 퇴학 처분을 받고 체포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에 진실규명 신청인은 박창래의 독립운동 사실을 확인하고 명예회복을 요청했습니다.

 

결정 요지

  1. 독서회의 설립과 활동:
    • 1930년 3월 여수 종고산 정상에서 열린 모임에서 독서회가 발족했습니다. 이는 여수지역의 청년 단체 중 항일 성격을 가진 주요 단체였습니다.
    • 박창래는 백인렬의 권유로 독서회에 가입하였고, 5개 조 중 2조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김재곤 등과 함께 활동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2. 체포와 수감:
    • 1930년 9월, 독서회 회원들의 활동이 일제에 발각되어 박창래는 다른 관련자들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 1931년 9월 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3. 해방 후 활동과 희생:
    • 박창래는 여순사건 당시 화양면 인민위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문헌자료와 증언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 여순사건 이후 박창래는 진압군에게 체포되어 ‘만성리 형제묘’에서 군경에게 희생당했습니다.

 

결론

박창래는 1930년대 독서회 활동으로 인해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의 선고를 받은 독립운동가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의 항일 행적은 예비조사와 전문가 면담, 참고인들의 일관된 진술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본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진실규명으로 판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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