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원회 :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조사국 : 조사1국
- 사건유형 : 항일독립운동
- 결정유형 : 진실규명결정
- 결정일 : 2007. 11. 27.
- 조사보고서 : 1기_홍의식의 진해에서의 항일독립운동
사건 개요
홍의식은 일제강점기 동안 진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와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의 후손인 홍기원이 이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규명을 요청함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했다.
진실규명 과제
조사 과정에서 홍의식의 수형 기록과 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자료를 검토했다. 특히, 수형인명부에 기록된 ‘홍이식’이라는 인물이 홍의식과 동일인물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수형인명부와 호적 등본에 따르면 홍이식은 1893년 5월 3일에 태어나 경남 창원군 진해군 경화동 74번지에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 임시총회에서 검거된 홍의식 역시 같은 주소와 생년월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연령이 32세였던 점을 고려할 때 동일인물로 판단된다. 진해시청 호적계의 확인 결과, 1893년을 전후해 경화(리) 출신으로 홍이식 외에 다른 인물이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호적상 이름은 홍이식이지만, 활동 당시에는 홍의식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방법 및 경과
조사는 문헌 자료, 신문 기사, 관련 기관의 자료, 그리고 홍의식의 후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졌다. 또한 진해 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와 관련된 전문가의 자문도 구했다.
조사결과
홍의식은 진해청년회, 진해소작회, 신간회 창원군지회 등 다양한 조직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1923년 진해청년회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1927년에는 신간회 창원군지회 설립에 참여했다. 또한, 1932년에는 진해장학회에서도 활동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했다. 홍의식은 여러 차례 검거되어 서대문형무소와 마산형무소에서 수감된 기록이 있으며, 1924년 4월 20일 조선노농총동맹 임시총회에서 검거된 후 5월 5일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되었다. 또한, 1926년 진해예배당 습격사건으로 검거되어 집행유예를 받았고, 같은 해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징역 4월형을 선고받은 기록이 있다.
홍의식은 1923년부터 진해청년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28년에는 조선인 노동자 상해 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한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이와 함께 진해소작회 창립에 참여하여 경남노농운동자 간친회와 조선노농총동맹 등의 대표로 참석하며 주요 활동을 이어갔다. 1927년 10월 신간회 창원군지회 창립대회에서는 선전부 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31년 제4회 정기총회에서는 임시의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1928년 창원신간지회 주최의 전(全)창원사회운동자망년대회에서 ‘하구야학교정세’에 대해 보고하는 등 야학교 활동도 병행했다. 1932년 진해장학회에서도 활동했으며, 1939년에는 조선어 과목 폐지에 항거하는 진해 제3소학교 부형회 평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다방면에서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결론
홍의식의 진해에서의 독립운동은 여러 자료를 통해 입증되었으며, 이는 진실규명으로 결정되었다.
관련 태그
#홍의식 #진해독립운동 #항일운동 #서대문형무소 #마산형무소 #신간회 #진해청년회 #진해소작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전환기정의 #TransitionalJustice #국가폭력
댓글 남기기